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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 스타실드, 정찰위성 소문 사실일까 스타링크로 유명한 스페이스X가 미국 국가정찰국(NRO)과 손잡고 스타실드라는 정찰위성 사업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 어디선가 들어봤을 것이다. 2021년 조용히 서명된 18억 달러 계약은 2024년 로이터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고, 2026년 지금은 위성 245기·계약 규모 90억 달러를 넘는 사업으로 자랐다. 소문이 아니라 숫자로 확인되는 이야기다.떠도는 정찰위성 소문, 스타실드부터 확인했다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이다.스페이스X는 스타링크와는 별도로 스타실드(Starshield)라는 사업부를 통해 미국 정부용 정찰위성을 만들고 있다. 스타실드는 2021년에 시작됐고, 세상에 알려진 건 3년이 지난 뒤였다.문제는 이런 이야기가 해외 콘텐츠를 통해 단편적으로 소개되면서, 스타실드의 계약 규모나 현재 상태는 확.. 2026. 9. 1.
아르헨티나 경제, 좌우 이념 탓이 아니었다 1913년 아르헨티나는 세계 10대 경제국이었고 1인당 소득은 미국의 70% 수준까지 올라갔다. 지금은 남미의 만성 위기국으로 불린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무너진 이유를 정치 이념에서만 찾으면 절반밖에 못 본다.다들 페론 아니면 자유시장 탓이라고 한다군부 독재를 지지하는 쪽은 페론이 심어놓은 보호무역과 포퓰리즘이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쳤다고 말한다.반대쪽은 정반대로 얘기한다.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친 건 오히려 자유시장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정책이었다는 것이다.그런데 1976년 군부, 1990년대 메넴, 2015년 마크리까지 세 번 모두 강도 높은 자유시장 개혁을 시도했다.세 번 다 정부 붕괴급 경제 위기로 끝났다. 좌파 정권의 보호무역 실험도 매번 고물가로 무너졌다.47년 동안 좌우를 오가며 실험이 반복됐는데.. 2026. 9. 1.
서든스탑, 140년 전에도 세계는 함께 흔들렸다 2026년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신흥국 통화지수가 하루 만에 0.7% 밀렸다. 인도네시아와 인도 중앙은행은 서둘러 자국 통화를 사들였다. 이런 동시다발 자본유출, 처음이 아니다. 140년 전에도 서든스탑은 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 전체를 한꺼번에 덮쳤다.서든스탑,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비교하는 이유결론부터 말한다. 1890년, 서든스탑 하나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거의 동시에 덮쳤다. 그런데 두 나라의 결말은 완전히 갈렸다.아르헨티나는 국가 태환을 정지했고 실질 GDP가 11% 줄었다. 브라질은 화폐 가치가 무너지고 은행들이 줄도산했다.같은 충격을 받았는데 경로가 다르다면, 원인은 외부 충격 자체가 아니라 각국이 위기 전에 이미 갖고 있던 국내 사정에 있다.서든스탑이란 해외에서 들어오던.. 2026. 9. 1.
스페인독감 공부하라던 다이먼, 준비는 달랐다 2020년 3월 4일 JP모건 회의실, 다이먼은 팀에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독감의 역사를 공부하라." 그리고 그 해 4월, 이 회사의 분기 대손충당금은 83억 달러로 불어 있었다.스페인독감, 세 번의 파도1918년 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스페인독감은 1919년 봄까지 세 차례 파도를 그리며 세계를 덮쳤다. 전 세계 사망자는 4천만~5천만 명으로 추정되고, 일부 연구는 1억 명까지도 본다.1차 유행은 1918년 봄~여름, 비교적 가벼웠다. 문제는 그해 가을 다시 찾아온 스페인독감이었다.2차 유행이 가장 치명적이었다.바이러스 변이와 1차대전 병력 이동이 확산 속도를 키웠다는 게 정설이다. 게다가 이례적으로 20~30대 청장년층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노약자가 주로 희생되는 보통 독감과는 정반대였다.스페인.. 2026. 9. 1.
블랙먼데이, 진짜 위기는 화요일 아침이었다 1987년 10월 19일, 이른바 블랙먼데이 당일 다우지수는 하루 만에 22.6% 빠졌습니다. 그런데 월가 실무자들이 진짜 식은땀을 흘린 건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시카고상업거래소가 문을 열지 못할 뻔했던 화요일 아침, 위기를 더 키운 건 결제 시스템의 시차였습니다.블랙먼데이, 통념보다 위험했던 그다음 날결론부터 말하면 이렇습니다. 1987년 10월 19일 블랙먼데이 당일, 다우지수는 508포인트(22.6%) 빠졌습니다. 사상 최대 하루 낙폭이었습니다.흔히 블랙먼데이의 원인으로 포트폴리오 보험과 프로그램매매를 꼽습니다. 컴퓨터가 기계적으로 매도 주문을 쏟아냈다는 설명이죠.그런데 금융 시스템이 정말 멈추기 직전까지 간 건 블랙먼데이 다음 날, 10월 20일 화요일 아침이었습니다.훗날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2026. 9. 1.
수에즈 위기, 준비금 20억 달러가 갈랐다 1956년 수에즈 위기에서 영국·프랑스·이스라엘 연합군은 군사적으로 이겼습니다. 그런데 열흘 만에 백기를 들었죠. 파운드화 준비금이 마지노선인 20억 달러 밑으로 떨어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입니다.수에즈 위기, 군사력으로 이기고 재정력으로 졌다수에즈 위기의 결말은 상식과 어긋납니다. 영국·프랑스·이스라엘 3국 연합군은 전투에서 이겼습니다.이집트 공군을 무력화했고 운하 북부 요충지도 장악했죠. 그런데도 수에즈에 상륙한 지 열흘 만에 철군을 발표합니다.이유는 총이 아니라 통장이었습니다.미국이 노린 건 영국의 파운드화 준비금이었습니다. 국고가 마르기 전에 영국이 먼저 손을 들었죠. 수에즈 위기는 군사력과 재정력 중 어느 쪽이 실제 승패를 가르는지 보여준 사례입니다.지금부터 그 셈법을 숫자로 뜯어봅니다.나세르는 왜.. 2026. 9. 1.
달러 패권 무너지는 데 걸리는 시간 2026년 1분기 기준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은 57.13%다. 탈달러 뉴스가 쏟아지는 요즘, 이 수치는 오히려 직전 분기보다 올랐다. 달러 패권이 흔들리는 건 맞는데, 속도를 재는 방법이 틀렸다는 신호다.달러 패권, 지금 숫자부터 보면결론부터 말하면, 달러 패권은 흔들리고 있지만 그 속도는 뉴스 헤드라인이 주는 인상보다 훨씬 느리다.국제통화기금(IMF)의 외환보유고 통계(COFER)를 보면 2026년 1분기 세계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환 중 달러 비중은 57.13%다. 직전 분기인 2025년 4분기 56.42%보다 오히려 올랐다.같은 기간 유로 비중은 20.03%로 줄었고, 위안화는 1.99%에 머물렀다. 탈달러 뉴스가 쏟아지는 시기치고는 이상한 숫자다.이유는 하나다. 역사적으로 기축통화 패권이 .. 2026. 9. 1.
닉슨쇼크 다음날, 다우지수는 왜 웃었을까 1971년 8월 16일, 닉슨쇼크 다음날 다우지수는 하루 만에 3.85% 뛰었습니다. 전날 밤 닉슨 대통령은 달러와 금의 교환을 끊겠다고 선언했는데도 그랬죠. 그런데 이 조치, 사실상 미국의 첫 채무불이행이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닉슨쇼크가 디폴트로 불리는 이유결론부터 말하면, 닉슨쇼크는 전통적인 국채 디폴트는 아니지만 계약 파기라는 점에서는 디폴트에 가깝습니다.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에서 미국은 금 1온스를 35달러에 고정하고, 다른 나라가 달러를 가져오면 언제든 금으로 바꿔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에 고정됐고요.1971년 8월 15일 일요일 밤, 닉슨 대통령은 TV 연설로 이 약속을 일방적으로 깼습니다. 발표는 세 가지, 금태환 정지·90일간 임금물가 동결·수입품 10% 관세였고 이.. 2026. 9. 1.
미국 정부 규모, 3%였다가 22%가 됐다 미국 연방정부 지출은 19세기 내내 GDP의 3%를 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22%가 넘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 규모 변화, 100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 게 아니라 특정 10여 년 사이에 한 번에 벌어진 일입니다.정부 규모 변화, 결론부터 보면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연방정부의 정부 규모는 19세기 내내 국내총생산(GDP) 대비 3%를 넘지 않았습니다. 남북전쟁 같은 예외적 시기를 빼면요.지금은 다릅니다. 연방정부 지출만 GDP의 22%를 넘고, 주정부·지방정부까지 합치면 38%에 육박합니다.정부 규모가 일곱 배 넘게 커진 셈인데, 이게 매년 조금씩 쌓인 결과가 아니라는 게 핵심입니다.정부 규모 논쟁은 뉴스에 자주 나오지만, 정작 그 규모가 언제 얼마나 뛰었는지는 잘 다뤄지지 않습니다. 도약은 특정 10.. 2026. 8. 31.
무솔리니 히틀러, 선거는 둘 다 졌다 1919년 11월 밀라노,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후보들은 27만 표 중 5천 표도 못 얻었습니다. 1928년 독일에서도 히틀러의 나치당은 득표율 2.6%로 참패했죠. 두 사람 다 선거에서 한 번은 떨어졌는데, 그다음 선택이 완전히 갈렸습니다.무솔리니와 히틀러를 나란히 봐야 하는 이유무솔리니와 히틀러는 보통 따로 배웁니다. 이탈리아사와 독일사가 나뉘어 있으니까요.그런데 두 사람의 집권 과정을 시간순으로 나란히 놓으면 다른 게 보입니다. 둘 다 처음엔 선거로 붙었다가 크게 졌습니다.무솔리니의 파시스트 후보들은 1919년 11월 밀라노 선거에서 27만 표 중 5천 표도 못 얻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사회당은 15만 표 넘게 가져갔습니다.히틀러의 나치당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1928년 총선 득표율은 2.6%, 4.. 2026. 8. 31.